해방과 한의학 배제

젊은 한의사들이 정책 결정권자들과 직접 묻고 답하다

해방과 한의학 배제

해방이 됐어요. 처음에는 이승만정부가 한의학을 없애려고 했어요. 자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의협 쪽하고 한의협 쪽하고의 다툼이 있습니다. 그 다툼이 뭐냐 하면요. 한의사제도가 식민주의의 산물인가. 아니면 한의사 폐지가 식민주의의 산물인가에 대한 다툼이 있어요.

의협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일본이 본토에서는 전근대적인 한의학을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은 식민 지배를 위해서 식민지 조선에만 전근대적이고 덜떨어진 한의사 제도를 존속시켰다. 의생이라는 이름으로. 따라서 한의사 제도는 식민지 잔재다. 만약에 조선이 일제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일본 본토처럼,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고, 근대적 서양의학 중심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고 일제 식민지하에서, 전근대적인 한의학을 존속시킨 거다. 따라서 해방 후 한국은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을 위해서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고 근대적 서양의학으로 거듭나야한다. 이게 의협의 주장이에요. 굉장히 그럴 듯하죠.

한의협의 주장은 이거죠. 원래 이 땅에 존재해왔던 한의학이 그리고 대한제국 시절에 이미 통합의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던 한의학이 일본이 들어와서 식민지 조선에도 자국의 논리를 관철시키고자, 한의사를 한시적 의생제도로 가둬버린 거다. 서양의사를 우위에 놨다. 심지어 1940년대에는 의생제도 조차 폐지합니다. 의생을 더 이상 뽑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한의사 제도를 만들어서 복권시키는 것이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명칭에 있어서도 똑같은 싸움이 있습니다. 의협의 주장은 뭐냐. 야, 원래 중국을 의미하는 한나라 漢자 아니었냐. 그걸 갖다가 한의사들이 전통의학이라고 민족의학이라고 우기면서 국민들을 세뇌시켜가지고 1986년에 이르러서 대한민국 韓자로 바꾼 거 아니냐.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한의학은 중국에서 전래된 중국의학이라고 생각했지 우리 고유의 의학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반면에 한의사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대한제국시절에 이미 대한민국의 韓자를 써서 한의학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 전에는 그냥 의학이었다. 그리고 서양의학이 들어왔을 때, 서양의학을 태서의학 또는 서의학이라고 불렀고 한의학은 의학이라고 불렀다. 그랬는데, 주도권을 서양의학에 내주면서 대한제국시절에는 모든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민국 韓자를 붙여서 그 당시에 한의학을 대한민국 韓자를 써서 불렀다. 일제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이 자국에서 한나라 漢자를 써서 ‘한방 의학‘이라고 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던 대한민국 韓자 한의학도 한나라 漢자로 바꿔버린거다. 지금 대한민국 韓자를 써서 한의학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은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탈식민주의고 그것이야말로 한의학의 복권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맹점이 있어요. 이 의사들의 주장이나, 이 한의사들의 주장이나 똑같이 한의학을 불변의 전통을 가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 불변의 전통을 전근대적이므로 폐기해야 될 대상이라고 보느냐, 그 불변의 전통이 민족 문화이므로 존속 부흥해야 될 대상으로 보느냐 그 차이밖에 없어요. 의사나 한의사나 전통한의학은 19세기 20세기에 존재하던 그 한의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똑같아요.

해방 후에, 한의사 제도가 만들어집니다. 1951년 부산피난국회에서 국민의료법이 통과되고 그 국민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를 병렬적으로 규정해요. 규정은 됐지만 우리 사회가 일제 식민지에서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탈식민주의 담론은 형성될 기회가 없었어요. 왜 그랬냐. 첫 번째로는 해방은 됐지만 그 해방된 빈자리에 일제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가 중심이 된 게 아니라 반공과 친미가 중심이 됐어요.

그 결과 어떻게 되느냐. 해방 후 한국의 보건의료제도가 3가지 영향 하에서 한의학을 방치 배제 외면합니다. 그 3가지가 뭐냐. 첫째, 일제식민주의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다는 것. 일제 강점기에 서양의학은 의사고 한의학은 의생이었잖아요. 해방되고 나서 형식적으로는 둘 다 의사, 한의사가 됐어.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그대로 경로의존성을 가진거에요. 일제 식민지 때 한의사의 역할, 일제 식민지 때 의생의 역할을 그대로 해방 후 한의사의 역할로 두고, 그 외 나머지 모든 의사의 역할은 전부다 서양의사에 둔겁니다. 이게 어디에서 차이가 났느냐. 교육, 서양의학은 전부 국공립에서 다 가르쳐요. 한의학은 국공립에서 가르치지 않아요. 서양의학은 국가가 연구발전을 시켜요. 한의학은 국가차원에서 연구하지 않아요. 서양의학은 공기로 써요. 다시 말하면 공중보건이라든지 공공의료영역에 전면적으로 씁니다. 한의학은 쓰지 않아요. 군진의료, 서양의학 다 씁니다. 한의학은 쓰지 않아요. 그러니까 국민의료법에서는 한의사와 의사제도를 뒀지만, 실제 국가의 제도 측면에서는 한의학은 없는 것처럼 행동해요. 왜 그러느냐 일제 강점기 때도 그랬거든. 일제 강점기 때 하던 걸 그대로 한거에요.

두 번째로는, 중국과 북한은 어떻게 달랐냐하면요. 중국은 식민 지배를 안당했잖아요. 중국은 직접적인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열강에 의해서 다 찢겨나가긴 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식민지배로 인해서 중의학이 탄압을 당한 건 없었어요. 내재적인 발전을 한겁니다. 중국도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소위 말하는 중서논쟁이 있었어요. 그 중서논쟁이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싸우고 그러면서 교류협력을 하면서 중서통합중심으로 방향이 잡힙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중의사 제도는 식민지배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의료제도하고 가장 큰 차이가 있어요.

북한은 중국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해방 후에 자주파가 득세했어요. 우리는 반공주의 친미가 득세했고 그들은 친일파였어요. 우리는 식민 지배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어요. 북한과 우리가 갈라진 시점이 이해되시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중국이나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란 말이에요. 공산주의 국가야. 공산주의 국가 입장에서 한의학을 좋게 볼 여지가 있어요? 사실은 없어요. 공산주의 국가는 유물사관을 가지고 있고, 과학적 사조를 굉장히 중시합니다. 그래서 봉건의 잔재를 던져버리는 나라들이에요. 한의학은 전형적인 형이상학이고 봉건제의 잔재고 비과학이라고 봤어요. 중국, 북한의 사회주의자들이 한의학을 그렇게 봤어요. 그런데 왜 최종적으로는 한의학을 중심에 놓고 자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을 정리했느냐. 굉장히 중요합니다. 중국은 반일투쟁과 반국민당 투쟁을 할 때, 중의학이 공헌을 했습니다. 북한도 반일투쟁, 독립운동에 한의학이 붙어있었어요. 그럼 서양의사들은 뭐했냐. 서양의사들이 다들 독립운동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의학을 전공한 조선인들의 정서라는 것은 좀 더 개인주의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자리, 관리의 자리는 전부 일본인 의사들이 다 차지했거든. 이 조선인 서양의사들은 공부 잘하고 똑똑해도, 개원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어. 일본에서 안써주니까요. 얘들은 일본의 학문을 존중하고, 일본에서 배워왔지만, 그러면서도 조선에서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자기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니까.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됩니다. 반면에 한의사들은, 의생들은 일본이 미울 거 아니에요. 일본 때문에 자기들 지위가 격하됐잖아. 그리고 언제 폐지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잖아.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을 돕게 됩니다. 이게 중국과 북한에서 통한거에요. 이걸 봉건의 잔재로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원시적인 형태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한의학에 녹아들어있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그 한의학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쓰기 시작해요. 특히 자주파가 득세하면서 더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서 중국과 북한에 쓰이는데, 우린 그렇지 않죠. 우리는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으니까. 우리 한의학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는 것은 메리트가 안되는거죠.

세 번째 영향은 미국입니다. 우리의 해방 후 초기 시스템. 예를 들어 전문의제도라든지, 의과대학 교육이라든지, 또 의사 시험이라든지, 보건의료시스템의 상당부분을 미국에서 가져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전쟁이 있었잖아요. 3년 동안에 우리나라 40대 이하의 젊은 의사들은 군의관으로 징병됐겠죠. 그들이 뭘 보느냐, 미국의 군의관들을 바로 옆에서 보는거에요. 미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군대에서 만나는 거죠. 그러니까 아주 초기부터, 정형외과 라든지, 임상병리과라든지 이런 과들이 분과가 됩니다. 그리고 1956년에 국민의료법이 통과되고 불과 5년 만에 전문의제도를 신설합니다. 왜? 미국이 하니까. 실제 해방 후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시스템현실에서 전문의 제도가 필요했느냐, 분과가 필요했느냐, 아니었죠. 완전 낭비죠. 왜냐하면 의사를 키우는데 비용만 더 들고요, 그렇게 키워진 의사들은 다 미국으로 가요. 배운 거는 많은데 대한민국에서는 할 게 없으니까. 그러면 의사노릇을 누가하냐? 한의사들이 다 했어요. 약사들이 다했어요. 실제 민중들은 그 전문의까지 딴 의사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숫자도 제한됐고. 비용이 많이 드니까. 지금도 우리나라의사 OECD 절반밖에 안되는데, 그때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다보니까 대한민국에서는 한의학은 거의 방치되고 거의 배제되고 시장에서만 살아남아요. 사립대학에서 가르치고, 그 시장에서 환자-의사 관계가 맺어져요. 시장에서 살기는 좋아 왜. 서양의학은 아까 말한 것처럼 비용이 많이 들고 숫자가 제한되니까 전 국민들을 커버하지 못한 거죠. 그 빈자리를 한의사, 한약업사, 약사들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시장에서. 국가는? 쓰지 않죠. 서양의사들이 충분히 많이 양성돼서 그들의 먹을 것이 줄어든 80년대 90년대 와서야 약사들도 마찬가지, 그때 와서야 비로소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약사들이 처음 에는요.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인 한약은 쓸게 아니라고 했어요. 약사신문 이런데 다 나옵니다. 그랬는데,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시장이 점점 포화되니까. 80년대 90년대 와가지고 약사들이 다 한약 처방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93년 95년 한약분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의사들도 점점 숫자가 늘다보니까 나중에는 의료일원화하자. 한약 우리 병원에서도 써볼게라고 합니다. 이것이 80년대 90년대 보건의료계열의 사회갈등으로 드러난 거죠. 그 전에는 사회갈등이 아니었어요. 그 이전에는 의사, 약사들 입장에서 한의학은 그냥 없어져야 될 전근대의 유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