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의생이라는 단단한 외피

젊은 한의사들이 정책 결정권자들과 직접 묻고 답하다

일제강점기, 의생이라는 단단한 외피

문제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됩니다. 일제는 1870년대 한의사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합니다. 왜 그랬느냐. 나라마다 추구하는 근대화의 목표가 다른 거죠. 일본이 생각하던 이상 국가는 서구 국가. 그래서 일본전역에서 가능한 빨리 서양화를 진행합니다. 의학도 얼마나 빨리 서양화가 진행되는가, 얼마나 빨리 근대화되는가의 승부였다고요. 그러니 당연히 서양의학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한의학은 폐지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였던 거죠. 그럼 실제로는 근대화된 서양의사는 누가 맡았느냐. 기존의 한의사들이 맡았어요. 다시 말하면, 기존의 한의사들에게 서양의사 면허증을 주고, 한의학은 없앤 겁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나라를 침략했죠. 이 침략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논리가 뭐겠습니까. 조선을 근대화하겠다. 조선을 문명화하겠다는 것이잖아요. 그게 의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되느냐. 발달된 서양의학의 세례를 뿌리겠다는 거죠. 근데 지금까지는 열등하고 전근대적이고 미신적인 한의학에 의존해야했다. 이제 우리 일본이 최첨단의 과학적이고 근대화된 서양의학 너희에게도 주겠다고 들어왔죠. 당연히 일본이 1910년에 들어올 때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한의사제도는 폐지하고, 서양의학으로 나라를 바로세우겠다. 일본에서 이미 성공한 그 모델을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심겠다고 얘기했고, 그것이 조선민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게, 그들의 플랜이었겠죠.

근데 이게 뜻대로 안됩니다. 뜻대로 안된 제일 큰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였어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조선 전체에 서양의학을 뿌릴 만큼의 돈이 없었어. 생각해보세요. 서양의사는 양성하는데도 돈 많이 듭니다. 설비에도 돈이 많이 들어요. 치료비도 비싸요. 그걸 어떻게 조선전역에 다 뿌리겠어요. 1930년대 1940년대만 해도요. 조선전역에서 무의촌이 60%가 넘어요. 심지어 의생조차 없는 곳이 20%가 넘었어요. 그러면 도대체 조선민중들은 누구한테 치료를 받았냐? 대부분은 약종상한테 받았죠. 그게 우리나라의 한의 의약분업이 안되는 역사가 굉장히 깁니다 그래서. 해방 후에도 한약업사들, 서양의학도 약사들이 실질적인 1차 의료를 했잖아요. 다 일제강점기 때부터였습니다. 해방직후에는 더 심했겠죠. 그나마 일본인 의사들, 일본이 만든 시설들 일본이 싹 갖고 갔으니까.

일본이 처음 들어올 때는, 일본의 목표는 선명했습니다. 한의사제도 폐지, 서양의학 중심으로 체계를 전면 개편. 그런데 돈이 드니까 어떻게 했냐. 한시적으로, 한시적으로 그냥 한의학만 쓰자. 교육은 폐지시킬 건데,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임시로 쓰자. 그 임시로 쓰겠다고 만든 제도가 의생제도입니다. 조선총독부가 그 임시제도인 의생을 어떤 용도로 쓰느냐. 당연히 한의학을 가르치고 한의학을 시술하는 용도로는 안 쓰죠. 의생을 일제가 쓴 방식은 방역, 보건, 예방사업에 씁니다. 의생시험도 전부 서양의학문제만 냈어요. 그들이 한의학을 얼마나 배웠는지, 한의학을 얼마나 시술할지는 일본의 관심이 아니었다고. 그러나 당장 방역은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때가 세균학이 제일 첨단이던 때라고 했잖아요. 그니까 의생들을 전부 다 국가방역사업에 투입을 시키고, 그 의생들에게도 철저한 위생을 강조합니다. 소독 엄청 강조합니다. 소독법을 다 배워, 서양의학으로 시험을 다 쳐. 그러고 이 제도를 곧 없애겠다고 했죠.

격변의 과정 속 단단해지는 전통 의학

그랬는데 이게 조금 바뀝니다. 언제 바뀌었냐하면 1930년대에 일본 본토가 ‘탈아입구‘가 목표였잖아요. 근대화시기에는. 서양의학으로 그냥 다 깔아야 돼 그랬는데, 30년대 되고나니까, 청일전쟁에서 이겼잖아요, 만주도 먹었잖아요,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깼잖아요. 일본이 스스로 자국을 부강하게 해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는 수준의 국가발전을 이루는데서 목표가 멈춘 게 아니라, 소위 방어적 제국주의에서 멈춘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먹어야지, 공격적 제국주의로 나서게 됩니다. 공격적 제국주의를 하려면, 탈아입구로는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서구화해야지 하면 거기서 끝나잖아요. 여기서부터 일본이 ‘대화혼’이라는 걸 주장합니다. 일본의 혼, 아시아의 혼, 대동아공영권, 이게 뭐냐,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다, 일본이 아시아의 대표다. 전 세계에 일본의 가치, 아시아적 가치를 퍼뜨려야 된다. 이렇게 입장이 바뀝니다. 목적은 제국주의하려는 거지. 근데 제국주의를 하려니까, 탈아입구가 아니라 탈국입아를 해야 되는 거다. 거꾸로 자기가 아시아로 들어와서 아시아의 대장으로 서야한다. 그러면서 식민지조선에는 내선일체를 주장한 거죠. 너네나 우리나 똑같아, 우리가 뭉쳐서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야해.

이렇게 되니까 어떻게 되느냐. 일본본토에서도 한의학이 재조명받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전통한의학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밝혀내는 것이, ‘대화혼’에 유리한 거예요. 아시아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유리한 거예요. 그래서 일본이 대대적으로 약재재배를 장려하고 한약에서 물질들을 추출해내는 연구들이 엄청나게 활발하게 진행됐고, 그걸 통해서 마치 한의학이 일본의 혼과 동일시되는 상황이 옵니다. 식민지 조선도 마찬가지인거죠. 식민지조선에서도 한약재배 엄청 장려합니다. 의생들에게 그때부터 한의학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의생시험에서도 한의학을 묻기 시작해요.

이게 만주사변이후에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더 심해집니다. 물자가 부족하니까 한의학을 써야하잖아요. 한약도 써야하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더 한약을 증산시키려 하고, 한의학을 장려하려고 듭니다. 1910년에 한시적이고, 폐지해야 될 제도로서의 한의학은 1930년대를 넘어서면서는 부흥하고 장려하고 쓸거리가 있는 것으로 이미지가 박히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한의사들은 어떻게 했냐? 폐지될 위기에서 30년대에 들어왔잖아요. 그때 조선일보에서 장장 9개월간 동서의학부흥논쟁이 일어납니다. 장기부라는 사람이 시작했고, 조헌영이라는 분이 끝을 냈어요. 9개월간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용이 뭐냐, 한의학이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서양의학과 다른 한의학의 특징은 뭐냐. 이걸로 논쟁을 벌여요. 결론은 뭐냐, 한의학이 서양의학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전통으로서의 매력이 있고, 종합의학으로서의 매력이 있고, 민족 의술이고, 민중적이고, 값이 싸고, 반면에 서양의학은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고, 이게 전통이 근대 서구에 대해서 거꾸로 우리도 괜찮다고 내세워서 반격을 가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전통의학이라는 개념이 단단해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