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전통

젊은 한의사들이 정책 결정권자들과 직접 묻고 답하다

만들어진 전통

제가 오늘은 한의학의 역사이야기를 가볍게 할까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한의학이라고 믿고 있는 것. 한의사들의 면허범위, 역할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얼마나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왜곡되고 단절된 것이며, 우리도 암암리에 그 틀에 빠져있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에릭홉스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을 쓰신 분이에요. 제목에서 벌써 결론이 났죠. 전통은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전통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전통적인 상황이 아니에요. 언제 만들어지느냐? 시대가 급변할 때 만들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전통을 필요로 하거든요. 시대가 급변해서, 전통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소위 전통적인 상황에서는 전통이라는 게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너무 익숙하니까. 그런데 뭔가 새로운 변화의 상황이 되었을 때,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라든지, 근대화의 물결이라든지, 서양의학의 도입이라든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룰 사변이 일어났을 때, 그 사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게 있어요. 만약에 학문이 즉자적으로(스스로) 발전을 했다면, 당연히 다양한 변형이 이뤄졌겠죠, 끊임없이 실용성을 확보하려고 했을 테니까, 그때그때 시대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계속 붙여나가겠죠. 근데, 한번 전통이라고 만들어지게 되면, 이 전통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변성과 형식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 불변의 형식이라는 것이 하나의 외피가 되는 거죠. 단단한 껍질이 됩니다. 2가지 효과가 있어요. 첫 번째로는, 존속가능하게 해주는 것. 안 없어질 수 있어요. 두 번째로는 발전을 저해하는 것. 왜냐하면 껍질이 단단하니까.

대한제국 시절, 광제원의 한의사들

우리나라는 어땠는지 한번 봅시다. 대한제국 시절, 서양의학이 막 물밀 듯이 들어오고, 어떤 사람들, 최한기 같은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그동안에 알고 있었던 한의학은 진리가 아니었구나. 뭐야 우리는 신령은 콩닥콩닥 뛰는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부 뇌에 있네. 기존의 한의학은 틀렸네, 기의 흐름을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동맥과 정맥이 흐르고 있네. 해부학? 와 기존에 수천 년 했던 한의학은 서양의학이 보여주는 이 해부학적 지식의 정확성과 사실성에 비춰보면 거의 그냥 형이상학이고 사변인가 라고 생각했겠죠. 이 사람들은 한의학을 버리고 서양의학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어요. 즉자적으로. 스스로의 판단으로 주장했어요.

반대편의 주장은 서양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냐? 기억하셔야 됩니다. 20세기 초반에도 서양의학은 외과수술을 제외하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항생제가 없었잖아요. 세균학이 20세기 초에 최고의 학문이었는데, 세균학 발전하면 뭐해요, 치료법이 없는데. 그때만 해도, 서양의학 조차도, 치료수단은 전부 그들의 전통의 수단에서 구했다고요. 지금도 전세계의약품의 절반은 천연물에서 나옵니다. 그때는 오죽했겠어요. 그러니까 야 저거 다 필요 없어, 진짜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학은 전통의학이야.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절대다수의 전통적 지식인들은 그 19세기 말, 20세기 초 지식인들은 동도서기의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아니 꿩 잡는 게 매지, 흰고양이 검은고양이가 뭔 상관있어, 서양의학에서 필요한건 서양의학대로 받아들이고, 한의학에서 득되는 건 한의학에서 받아들여서, 의학이 실용적이기만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그 당시 지식인들의 주류였어요.

그게 제도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광제원(廣濟院). 근대식 관립 병원이잖아요. 그 광제원에서 한의사들이 근무했어요. 그리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자유롭게 썼어요. 동제의학교. 최초의 의대 아닙니까. 한의학도 가르치고 의학도 가르쳤어요. 이상하게 생각 안했어요. 의사규칙 1900년 1월2일에 반포되지 않았습니까. 관보에 게재됐죠. 그 의사규칙에서 표현한 의사는 뭐였냐. 한의학 하는 서양의사였어요. 한의학을 배우냐 서양의학을 배우냐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어. 환자한테 도움 줄 수 있는 교육받고 환자에 도움 될 수 있는 시술하면 그 사람은 의사라고 불렀다고요.